공의 휘는 한 이요, 자는 장우(章于) 이며, 호는 송오 이시다.
신라 문창후 고운 시조 (최치원)의 12세손이며 5세손 선지(善之) 직계 7세손 홍재(弘載), 홍재의 3자이시다. 父는 고려문과 참판 벼슬을 한 홍재이며, 공은 공민왕 甲寅년(1374)에 출생하였다. 고려조에서 시호위 대장군(神號衛 大將軍)을 역임하고 고려가 망하여 경북 경주 서쪽 송화산 서곡에 은거하던 중 이 태조가 등극하여 벼슬길에 나오도록 권유하였으나 응하지 않았다고 하며 세조 癸亥년(1442)에 享年 70세 卒하시다. (읍지에기록되다) 묘는 송화산 유좌. 현(경북경주시현곡면나원리송화유좌)배위는 월성金씨 숙인이시다. 壬申(1392)년에 출생하시고 癸亥(1443)년에 享年52세로 卒하시었다. 묘는 공의 묘지에 부장(附葬) 하다.
― 현령공파 복동 (縣令公派 福東)
신호위대장군 : 고려 때 국방을 담당한 6위의 하나 상장군의 통솔하에 있으며 7여의 군대를 거느렸음 조선 초엽 의흥친군의 10위의 하나 상장군과 대장군의 통솔하에 있으며 5영의 군대를 거느렸음 태조4년(1395)에 용기 수위사로 고침. 고려 무관의 정3품벼슬 상장군의 다음이고 31대공민 왕 때 대호군으로 고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