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랑공파 호(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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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 휘는 호 이다.

신라 문창후 고운 시조 (최치원)의 12세손이며, 5세손선지(善之)의 직계 8세손이다. 父는 고려문과 참판이신 홍재(弘載)이다.

공은 고려 말 정랑 외 문과참판(文科參判) 벼슬을 하시고 문장이 주옥처럼 빛나 세상에 명성을 날리시었다. 후 참의(參議)벼슬을 하였으며, 여생을 충남 공주의 동산에 들어가 정착하시었고 태종 己亥(1414)년에 卒하시다. 묘는 공주의 동산 해좌에 모시었다.

  ― 부제학파 경지 (副提學派 敬止)
  ― 참봉공파 경인 (參奉公派 敬仁)


 정랑 : 고려 때 6조나 고공사 등의 중앙 관청에 속하는 정 5품의 벼슬 25대 충렬왕 1년(1275)에 낭중을 바꾸어 부른 이름으로 공민왕 18년 (1369)에 직랑으로 바꾸었다가 21년(1369)에 다시 본래의 이름으로 고쳤음.

 참의: 조선 때 육조에 소속하는 정3품 벼슬 또는 그 자리에 있는 사람정원은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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